원래보다 한달 늦은 수능이 끝나고 이제 수험생들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수시, 정시 원서를 넣을 고민을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 벌써 수능을 친지 10년이나 지나서 요즘의 입시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대학을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고민을 먼저 해본 사람으로써 그냥 그때의 내 생각이 어땟고 결론적으로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내가 돌아본 그때의 고민이 어떤 것이었는지 내 경험을 한 번 써보고자 한다. 이미 대학생들에겐 화석도 아닌 가루가 된 사람으로써 지금의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더군다가 이런 글을 찾아볼 수험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으나) 우연히라도 이 블로그에 들어와서 내 경험을 읽고 조금이라도 선택에 도움이 될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회상해본다.
어렸을때는 누구나 장래희망이 있다. 누구나 남들보다 좋아하는 분야, 남들보다 잘하는 분야가 있다. 나는 어학을 좋아했고, 어학관련 학과를 가고 싶었다. 당시 내가 남들보다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를 찾은 것이다. 중학교때 가고자하는 대학과 학과도 정해두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부모님이 반대하셨다. 어학 분야는 그 나라에 살다온 친구들을 이길 수 없고 그것만으로는 밥벌이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했다. 가고싶은 학원, 갖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가난이 싫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추천하신 소위 '돈 잘 버는' 직업으로 장래희망을 바꿨다. 내가 그 분야에 흥미가 있는지, 잘 할 수 있는지는 살펴보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내내 부모님이 추천해준 장래희망이 내 장래희망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입시때 전공을 선택하는데 크게 고민하지 않게된 이유가 되었다. (내가 가고싶던 분야는 이미 나가리가 되었으니...)
나는 두번의 수험생활을 했고, 입시운이 있는지 결론적으로 두번다 원하는 목표를 이뤘다. (이렇게 쓰면 좀 재수없어 보이겠지만 당시의 '성공'이 결론적인 '성공'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니 이해해주었으면...)
내 첫 번째 입시에서의 목표는 '원하는 대학에 가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의 순위에 집착해서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 대학에만 간다면 과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3 수시접수 기간에 그 학교의 수시논술 과별 경쟁률을 보고 가장 경쟁률이 낮은 학과로 지원했다. 전략적으로 선택한 일은 아니었는데 결론적으로 수능성적이 좋지 못했음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처음 합격통지를 받고는 너무나 놀라서 깜짝 뛰었다. 꿈이 이루어진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막상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깨져버렸다. 원하던 대학에 갔다는 기쁨과 거기서 오는 뿌듯함에 학교를 갈 때마다 설렜다. 만나는 선후배, 동기들 모두 멋진 사람들이 많았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막상 전공수업은 너무나 나와 맞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집중을 해도 이해가 안가는 내용에 점점 수업에 흥미를 잃었다. 설상가상 동기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꿈꾸던 대학생활은 방황의 길로 흘러가버렸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전공을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 두 번째 입시는 '원하는 학과에 가기'였다. 이번엔 대학은 상관없어졌다. 문제는 내가 그 학과를 고른 이유가 나의 흥미가 아닌 '돈 잘 버는' 전공이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흥미있는 분야가 아니다보니 대학에서의 공부는 너무나도 노잼이었지만(물론 재밌는 분야도 있었다), 어차피 내 목표는 직업에서 흥미를 가지는게 아니었으므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전공으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흥미라는게 인생에 꽤 중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전공을 살려 취업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어느정도 본인의 전공에 관련하여 직업을 선택하게 되기 때문에 나는 대학4년의 전공이 인생을 좌우하는 큰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을 하면 그 일을 하루에 (미니멈)8시간씩 하게 된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9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출퇴근을 위해 걸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우리는 평일에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일에 쓴다. 그 일이 나에게 너무나 지루하고, 보람이 없다면 나의 하루가, 1년이, 길게는 30년이 지루하고 보람없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게다가 흥미가 없는일은 당연히 능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건 본인의 평가에도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이건 당장 19살에 내 옆에 있는 친구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면서 현실적인 부분을 배제할 수는 없다. 나 또한 많은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하고 (종종 무시하고) 선택을 했고, 그에 따른 대가와 후회를 겪었고, 한편으론 만족감도 얻었다(현실에 순응하면 어느정도는 만족스러울 수 있다). 그렇지만 어린나이의 수험생들이 좀더 내가 좋아하는 분야,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같은 대학 서열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잘 배울 수 있는 대학이 어디인지, (물론 비슷하다면 더 좋은 학교를 꿈꾸는 것도 좋다.) 적어도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 캠퍼스는 어디인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나'를 기준으로 했으면 좋겠다. 또, 좋아하는 분야가 있지만 주변의 반대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지 못한 후회는 매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일이 힘들고 불만족스러울때마다 불쑥불쑥 찾아온다.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고,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직업이 언제까지나 좋은 직업이지도 않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사'자 직업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나이들어보면 보인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일하는 건 힘들다. 적어도 피곤하다. 아침일찍 일어나 해져서야 돌아오는 생활을 일주일에 5일이나 해야한다. 그런 시간을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면) 30년 정도는 보내야 한다. 그러니 적어도 내가 조금이라도 더 흥미있는 분야, 더 좋아하는 분야, 더 잘하는 분야를 찾았으면 좋겠다. 돈은 직장에서가 아니어도 벌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더 좋은 대학에 나왔다고, 더 취업잘되는 과를 나왔다고, 더 공부를 잘한다고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전공을 선택하는 기준을 '나'로 두고, 다른 이유는 잠시 접어두고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결론적으로 대학이 중요할까 과가 중요할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내가 원하는 전공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대학을 가면 그만큼 멋진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적어도 성실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대학이 정말 확실하다면 내 적성에 대한 고민을 조금 미루고 자율전공학부로 입학해서 전공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고, 원하는 대학에 간 후에 전과를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대학생일때 내 적성과 하고 싶은일에 대한 고민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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